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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역사와 활용
작성일 2011-01-09 (일) 10:07 
분 류 공예 
 
   조회 : 3340      
「상서익직편(尙書益稷篇)에 오채의 실로 황제 시대에 12복장제도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오채의 실이 모이는 것을 다회라 한다.

또 순(舜) 임금의 누이 누수가 오채의 실로 자수를 놓아 그림을 이루었는데 이것이 중국회화미술과 자수 미술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자수는 일명 봉수 또는 봉직 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봉직이란 일종의 다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회화.자수.다회.는 그 근원이 같다고 할 수 있다.주 나라때에 이와같은 공관을 관장하는 기관을 설색지공 또는 화귀종 이라고 하였다.끈목을 형성하는 기본 재료는 털실,삼베실,명주실,무명실,모시실,닥나무실,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낙랑시대의 왕우묘(王旴墓)에서 광다회(廣多繪)가 출토된 일이 있었고,삼국시대에도 신라조(新羅組)등의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회(多繪) 기술이 있었으며,고구려의 무용총 벽화의 주실에서도 끈목의 흔적이 보인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고구려 궁인들은 공사로 모일 때 공복으로 비단옷을 입고금과 은으로 요대에 장식했다'는 기록이 있으며삼국사기복식조를 보면 삼국의 복식에서모두 띠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광다회 허리띠,말장식, 방장장식이 그 예다.

특히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중 황해도 안악군 유순리에 있는 안악 3호분의묘주와 부인의 초상에서 나타난 평상의 닫집에 방장을 묶은 끈과 술에서 매듭의 흔적이보이며, 백제와 신라의 금관, 귀고리, 허리띠 등의 꾸밈새에서도 끈목의 기법을 찾아볼 수있다.

고려시대 매듭의 발달은 고려도경의 자료를 통해 각종 의식이나 복식에 사용하였던물품에 대한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고, 고려불화와 고려청자에서도 매듭의 양식을 찾을수 있다.

고려불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일본 나라 송미사에 소장되어 있는 1320년 아미타8대보살의대좌에 나타난 귀면 문고리에 드리워진 끈을 들 수 있는데, 그 끈에는 상하로 마주한 대칭 매듭이 나타나 있으며, 지장보살 2점의 가사끈은 분홍색 원다회로 되어 있다.

이 밖에도 불화에 보이는 관, 영락, 목걸이, 허리띠 등에서 매듭의 술장식이 보이며,이러한 양식은 조선시대 탱화로 이어져 관음32응신도에서도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밖에 각종 번, 당과 연, 가마의 장식 등에 쓰인 유소, 복식에 쓰였던 것 등이 전해진다.또한 고려청자에도 매듭무늬가 나타나는데, 청자상감복사음각모란문매병의 네모서리에는 유소가 달린 매듭이 부착된 사각보가 시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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